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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5

작성자 사진: DA LEEDA LEE

우정은 죽기도 한다. 시간 위에 놓이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맥락 속에서 쉽게 이해 가능하다. 연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큰 싸움 뒤에 상처가 곪았을 수도 있고, 단지 귀찮아서 단절이 나버릴 수도 있고 태어날 수 있는 방법 만큼이나 사인 또한 다양할 수밖에. 그게 다양하단 건 그만큼 쉽게 죽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죽는, 그것도 쉽게 죽어버린다는 사실이 막연하게 잡히는 그 의미를 퇴색시키진 않겠지만, 적어도 별다를 건 없는 가치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그럼 왜 우정이란 건 알다가도 모르겠는 모호한 감정으로 표상되는가? 이 지점이 내 접근에 동의할지를 판가름할 분수령이 될 텐데, 답은 간단하다. 그게 감정이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감정이란 게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감정이라는 개념을 알기도 전에, 혹은 스스로 이미 파악한 내용을 무시하고서 그것에 '모호하다'라는 라벨을 붙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부적인 작용에 대해 논하자면 그렇게 되기도 하겠지만 우정 일반, 즉 정은 의외로 그 풀이가 간명한 편이다. 정이란 대상이 되는 타인에게 들인 시간을 필두로 한 에너지를 뜻한다. (대개는 시간으로 환원될 수 있다.) 정과 동반되어서나 따로나 추억이라는 개념 또한 같은 맥락의 것이다. 대상에게 투자한, 순화하자면 함께 한 시간 중 어떤 쪽으로든 의미있던 순간, 그 편린이 추억이다. '누군가와 손절을 하려 하는데 정 때문에 못하겠다, 함께한 추억이 있는데 어떻게 그러냐'는 둥의 말은 감상을 제하고 순전히 현상으로만 해석하자면 결국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 일단은 두겠다'는 다소 냉소적인 문장으로 바꿔쓰인다. 앞의 문장을 냉소적인 어조로 읽는 것조차 본문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모호한 감상이지만.


돌아와서, 우정이 죽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중에 대개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계기가 되는 경우가 잦다. 흥미로운 건 이를 주식 용어에 비견하여 손절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앞선 설명을 따라왔다면 손절의 원의인 '손해를 보고 판다.'와 우정의 종식이 상당히 닮아있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차이점이라고는 우정은 어디까지나 비물질적 가치로서 누군가에게 양도될 수 없으므로 팔 수도 없다는 것이다. 즉, 넓은 의미에서의 재활용이 불가하기 때문에 주식과 다르게 우정은 소멸, 즉 죽음을 맞이한다. 그간 투자한 시간이 온데간데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개념에서 손절이 최악을 방지하는 차악으로서 기능하는 것처럼, 우정에서의 손절 또한 때론 예방적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자면, A에게 오래된 친구가 하나 있다 해보자. 이 친구는 좋은 친구이긴 하나, 성격의 차원에서 단 하나의 흠이 있다. (돈을 제때 안 갚는다던지, 남을 깎아내리는 유머를 유독 좋아한다던지 등이 있겠다.) A는 지금까지 참아왔거나, 그 동안은 상관이 없었지만 환경이 변해 이제는 이를 '의식적으로' 견뎌야 하는 상황에 다다랐다. 문제에 대해 의식한다는 건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함과 동시에 시간 또한 소모한다는 것이므로 그 시점에서 A는 지속적인 손해를 입게 된다. 말하자면 불필요한 지출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A에겐 그와 더 친구로 지내지 않는 것이 시간의 출혈을 막는 선택이 된다. 주의할 점은 그 친구의 질적으로 좋은 성질로 그가 지닌 해로운 성질을 상쇄하려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친구가 지닌 좋은 성질은 이미 감가상각을 거쳐 가치가 하락했거나,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된다. (애초에 그것은 단지 친구가 되기 위한 조건일 뿐이지, 지속된다거나 가치가 오르는 맥락에서 이해해서는 안된다.)


종합해보자면, 그렇기 때문에 우정은 자연사를 맞기도 한다. 감상적인 관점에선 이는 최선의 종착지이면서도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결말이기도 하다. 한때 잘 지내던 친구와 어느새 연락이 닿지 않고, 다시 만날 것을 상상해도 걱정부터 앞선다면 이미 그 관계를 매개하는 우정은 제 명을 다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고로, 우정이란 정신적 가치이며, 감정이면서도 대상으로서 그 특질은 물질과 유사하다. 다 썼으니까 없는 것이다. 읽어준 당신에 대해 위로를 한 마디 건네자면, 당신은 지금 생각하고 있을 그 누군가와 최고의 시간을 유감없이 보낸 것이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추억할지언정 슬퍼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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