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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5

작성자 사진: DA LEEDA LEE

어제는 목요일이 끝나서 기뻤다. 그러나 오늘이 금요일이라고 들뜨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다. 세탁소에서 옷들을 찾아오고, 빨래를 널고 또 개었다. 뿌듯하단 생각이 들자마자 금세 다시 사그라들었다. 달력을 바라보며 수없이 세웠던 계획과 상상, 그 중 서른을 내다보는 내 모습은 이렇게 예정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얘기를 하다보면 우리가 정말 늙었다는 걸 구태여 확인하게 된다. 그럴 나이라며 점잖은 행색을 해보이는 친구들.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인 난 여전히 어설프다. 그 무리 속에서도 아직 내세울 게 없는 나는 말수를 줄이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 뭘 하고 있냐 물어보면 준비된 레퍼토리를 판다. 이번이 마지막 학기인 것, 끝나고나서 공익으로 1년 9개월 간 일하게 되는 것, 그러고나선 독일로 유학에 갈거라는 것. 모든 게 예정일 뿐인 나는 예정에 없었는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요새의 일기는 이렇게 쓰인다. 몇몇은 이 즈음이 되니까 인스타를 하기가 두렵단다. 앞서나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비교하게 된다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지고, 공부가 손에 안잡힌다라는 얘기를 들으며 한번도 난 공감해본 적이 없었다. 웃기지만 그래서 난 다른 줄 알았다. 매대에 화려하게 장식된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어구처럼, 나의 시간을 살고 있다 착각한 것이다. 이런 일기를 쓰는 게 달가울 수아 없지만, 덕분에 오늘에 와서야 깨닫게 된 게 있다. 나도 그들처럼 조바심이 나고,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있다는 것. 여태 왜 몰랐을까? 난 그저 외면해왔을 뿐이었다. 이걸 안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떳떳하게 고갤 들고 다니진 않을 수 있겠지. 지금은 멀리 간 걔가 했던 말마따나 난 참 뭘 모르는 놈이구나.


이런 자기 검열, 좋게 보자면 성찰이 표가 나려면 강산이 변해야 한다. 내일 당장 하늘에서 학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다, 오히려 지금 고매한 다짐을 한다는 건 최악의 한 수다. 그냥 내일 할 일을 하고, 가상의 경쟁자보다는 더 하고, 그게 전부다. 이게 노선에 들어선 거라면 끝까지 찬란한 반전따윈 아마 없을 것이다. 되려 진짜 고생이 뭔지 알게 된다면 몰라도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포기할 생각은 안 든다. 시작도 안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언젠가 했을 예정에선 그마저도 포기했겠지. 예감이 좋다. 당연히 확신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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