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든 틀릴 수 있다. 거짓에 대한 믿음, 전칭/특칭에의 혼동, 전문성이 결여된 통계 해석, 특히 가치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오류는 개중에도 치명적이다. 내 초유의 관심사는 이런 잘못의 늪에 빠지지 않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때문인지 난 어떤 사건에 대한 내 견해를 남에게 밝히는 일이 잘 없다. 내 의견이 있는데 말을 안하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판단을 못 내린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다. 언제고 첫번째 돌다리만 두들기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요새 삶에서 뭐가 중요한지 잘 판단이 안 선다. 행복이라 말하면 그건 너무 뭉뚱그리는 게 되고, 마찬가지로 돈도 누가 없고 싶겠는가 다 한 푼이라도 더 땡기고 싶지. 근데, 그거에 관해서라면 난 좀처럼 간절하지 않은 편이다. 이런 미지근 온도를 최근까지도 난 거지 근성으로 표현하곤 했는데, 여전히 술만 들어갔다 하면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우는 엄마를 생각하니 이것도 못할 짓인 것 같다. 별개로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쨌든 불편하지 않기 위함이니까 행복으로 환원됨을 고려하면 그렇게 좋은 설명도 아니긴 하다.
누구는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걸 원하기도 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아마 이것도 꽤 최근까지 아닐까 싶은데, 먼 기억을 되짚자면 명언병을 심하게 앓았다는 인상이 떠오른다. 특징적으로 꼴 뵈기 싫은 이런 모습은 서점에 진열된 쓰레기 베스트셀러들을 보고서는 금세 자가치유됐다. 여담이지만, '곰돌이 푸 미쳐도 좋아'와 같은 시덥잖은 위로 몇 줄로 한 페이질 낭비하는 부류의 책은 쓰레기라 굳게 믿는다. 그건 누구의 인생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 여튼 예전엔 심심찮게 알아서 잘 하고 있는 누구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기를 즐겨했는데, 그건 전부 허영심을 해소하기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회상했을 때, 쪽팔린 에피소드가 생각나지 않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난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럴 의향도 없다.
해서 요새는 그저 하루하루 일상적이고 누구나 따를 법한 가치를 토대로 보내고 있다. 나쁜 건 아닌데, 안 나쁘다 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없단 뜻은 아니다. 하자 있을 때 그제사 뜯어보는 성격이었다면 철학과에 제발로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고민은 필요하지만, 직감 상 내 머리가 새하얗게 희더라도 난 이 문제의 답을 못찾을 것이다. 자기 인생의 지상 가치도 없는 인문학도...멋대가리 없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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