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렛일에 꾸준히 시간을 들이는 걸 싫어했던 때가 있었다. 그 중 단연 손에 꼽을 정도로 싫어했던 루틴은 바로 일기 쓰기였다. 정확히는 신세 한탄이 취미인 자들의 보이기 위한 일기, 더 정확히는 그걸 쓰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하...씨발 또 알바 가야되네, 좆같다."
"야 그래도 그건 돈이라도 많이 주잖아. 난 엄마 가게라서 도망도 못가는데 넌 그냥 싫으면 추노하면 되지."
"그럼 다시 본가로 들어가야 되는데? 서문에서 3분 새벽 연희노가리는 절대 못참지 ㅋㅋ"
"씹 ㅋㅋ 그럴 거면 좆같다는 말은 왜한 거임 어차피 할 거면서."
"좆같잖아. 가기 싫은데 가야 되고. 알바 안했으면 걍 새피 조지는 건데 인정?"
"그게 맞지 ㅋㅋ 야 나 피방 시간 다 됨. 그냥 탈주하고 나가자 에휴..."
낡아빠진 나무로 된 탁자가 놓인 작은 공터에 비둘기들은 한데모여 머리를 떨구고 메마른 땅을 쪼아대며 기도한다. 신이 있다면 제발,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해주세요. 그들은 해가 길게 늘어진 낮에는 필요하기 때문에 신을 불러 다가올 시간을 죽이고, 빛없이 고요해진 밤엔 지나간 시간을 부르고 다시 신을 죽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매일 스스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기분이 어땠는지 묻는다. 일기를 쓰는 이들은 야누스의 전령을 자처한다.
싫어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그렇게 되어버렸다. 농을 좀 붙이면 사랑 같기도 하고...전에 뭐라도 되는 줄 알았던 때엔 요상한 글을 써놓고 시간 아깝게 제목을 뭐라 붙일지 고민했었는데, 주제를 알고나서 날짜만 간략히 적었던 게 화근이었다. 일기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인 '그 날의 자신을 기록한다.'에 완벽히 부합하게 되어버렸다. 한 2년 전부터는 이렇게 어떤 생각이 들 때 줄글로 쓰는 게 내게 도움이 되는 건가, 그보다 이전에 즐거운 일이기는 한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고 그 둘 모두 아직 해소되지 않은 물음이다. 그래도 하는 걸 보니 스스로 재밌어하는 거 같긴 하다.
그렇다해서 지금 일기를 쓰는 게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생산적인 일은 절대 아닌 게 틀림없으니, 나 또한 비둘기고 야누스다. 시간의 부스러기를 찾는, 시간을 아까워 하면서도 주워담고 싶어 하는 그런 평범함이 있는 사람이다. 올핸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만 했고, 그럴 환경도 갖춰져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하는 데에 보내버렸다. 모바일 게임엔 돈을, 롤엔 감정을, 둘 모두에 시간을 낭비했다. 낭비 자체는 항상 즐거운 거라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막상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게 스스로를 곤경에 처하게 할만큼 심한 정도일 때에만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여튼 좆되긴 좆된 것 같다. 앞으로 난 어떻게 될까? 이 일기를 나중에 읽을 때 나의 반응이 궁금하다.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일기를 읽었을 미래의 그 날에 비슷한 내용으로 일기를 쓰는, 변한 거 없는 모습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야누스는 시작과 변화의 신, 나로 인해 나에게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물론 비둘기는 그냥 비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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